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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론:「서경별곡」은 고려시대의 가요로 언제, 누구에 의해 지어졌는지 알려지지 않고 있다. 『樂章歌詞』(악장가사)에 전문이, 『時用鄕樂譜』 (시용향악보)와 『樂學便考』(악학편고)에 첫 부분이 수록되어 있으며,고려 공민왕 때의 학자익제 이제현의 유고를 모아 엮은 시문집, 『益齋亂藁』(익제난고) 소악부에 제2연이 한역되어 전한다.
「서경별곡」에 대한 조선조 성종대의 기록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 기록이 나타난다.“서경별곡과 같은 것은 남녀가 서로 좋아하는 가사이니,매우 불가하다. 악보는 갑자기 고칠 수 없으니,곡조에 의하여 따로 가사를 짓는 것이 어떻겠는가?”는 전지가 성종에 의하여 내려진 것으로 보아 궁중악에서 배척되었음을 볼 수 있다. 고려시대 서민층에 널리 불려지다가 조선시대에 와서는 궁중음악으로 채택되어,세종 때부터 궁중의 종묘악으로 불려지다가,성종 때는 ‘남녀상열지사’라 하여 문제시되는 가사와 곡조를 모두 버리거나 기존의 곡조에 가사를 새로이 개편하여 사용할 것을 논의하였던 것이다.
<서경별곡>은 고려가요라는 것 외에 작가라든가 창작시기에 관한 기록이 없다.
원문 해석상 논란이 되고 있는 부분인 ‘쇼셩경’과 ‘괴시란’, ‘ 럼난디’ 는 양주동의 설에 따라 각각 ‘서경(평양)’, ‘사랑하신다면’, ‘음탕한지’ 로 해석했다.
또, 이 작품의 구조를 3장으로 나눌 것인지 4장으로 나눌 것인지에 대한 의견은 3장 쪽으로 기울었다.
단일가설이 아니라고 보았을 경우에 합가설이 주장될 수 있는데, 합가설에도 크게 두 가지로 나눠볼 수 있다. 세 개의 서로 다른 노래의 합성이라고 보는 경우와 1연 3연이 하나의 노래이고 2연이 삽입되었다고 보는 경우가 있는데 우리 조는 전자로 결론을 내렸다. 창작시기는 매우 다양한 측면에서 논의가 되고 있는데 우리는 2장의 구슬곡이 <정석가>의 마지막 부분에도 삽입되었다는 사실을 토대로 <서경별곡>이 그때로부터 오래전에 창작된 것이라고 생각되어, 10세기 말~ 11세기 초에 지어진 것이 아닌가 추측한다.
정리하면, <서경별곡>은 10세기 말~11세기 초에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짐에서 오는 아픔을 노래한 3장의 형식을 가진 고려가요로 고려 이별시가라고 본다.